비가 오락 가락 하는 가운데
앞 뒷 산 모두 운무가 가득하다.
그 동안 따 모아둔 매실을 꺼내 씻어 물기를 뺀 다음
매실 주를 담궜다.
매실주야 오래 전부터 담궜지만
이 마을에 와서야 제대로 된 맛이 났다.
이전까지는 매실주야 별거 있나 소주에 매실만 넣으면 되지 싶어
일정한 비율없이 담그다 보니 맛이 별로였다.
이 마을에 오니 소주에 열매를 담그는 매실주에도 법도와 요령이 있어
그에 따르니 술 맛도 제대로 났다.
술맛의 비결이 그 레시피도 레시피거니와
더 중요한 것은 숙성이다.
한 3년 지난 매실주는 맛이 차원이 달라진다.
생소주 맛도 넘어서고 매실 맛도 넘어선 농익은 맛이다.
그래서 올해부터는 매실주 담은 항아리 두껑에다 3년 뒤의 오늘날짜를 기입해 놓았다.
술을 많이 먹지도 못하면서 뭔 욕심인지는 모르겠지만 10상자를 담았다.
뭐든 익어야 제맛이다.
일도 손에 익어야 일의 차원이 달라지고
부부간의 정도 익어야 가정이 편안하고
사람 사이의 관계도 익어야 한다.
그래야 사는 맛이 난다.
익는데는 세월이란 시간과 적정한 조건이 필요하다.
세월만 간다고 익는게 아니다.
조건이 맞지 않으면 상하기도 한다.
살아가는 삶이 익어가는지 돌아보게 된다.
세월 지났을때 잘 익은 향이 나는 사람되어 있을까.
고약한 구석이 많아 익는데는 시간이 많이 걸릴꺼다. 아마도..
세월이야 그냥 가는 거지만
그 세월과 함께 익어가고 있는지
하루 하루 되돌아 볼 일이다.
앞으로 내 삶의 항아리 항아리에
어떤 꿈들을 담아
잘도 익어갈 삶의 장독대 만들어 볼까
눅눅한 저녁에 찻자리 정리하며
잘 떠오르지 않는 밑그림 그려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