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후였다.
공장에서 이런 저런 일을 하는데 전화가 왔다.
"반장 뭐해?"
노인회 총무님이다.
"예, 일좀하고 있습니다."
"얼른 노인정으로 와봐"
이렇게 가타부타 와보라는 경우는 대부분 두가지 경우다.
뭔가 따질 일이 있거나 혹은
맛있는 (다분히 동네 사람들의 주관적인)먹을 게 있는 경우다.
마을회관 마당엔 뭐를 삼는지 솥에서 김이 솔솔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말복이다.
4평짜리 정자엔 마을 사람들이 다 모여 남자, 여자 나뉘어 앉아 있었다.
"어서 올라와서 이것 좀 먹어."
"뭡니까?"
"소머리를 삶았어. 영 맛있다니까! 다음에도 소머리를 사서 먹어야 겠어.
돼지고기 보다 훨씬 나아."
한점 먹어보니 말대로 고소한게 참 맛이 좋았다.
구워먹는 소고기보다 더 맛이 좋다.
"언제 소머릴 사왔습니까?"
"오늘 아침 일찍 쓰레기 치우고 구례가서 사왔지. 8만원 주고 샀어"
그러고 보니 회관마당에 한가득 쌓여 있던 쓰레기들이 깨끗이 치워졌다.
작년인가 쓰레기 태우는 문제로 동네사람들과 한바탕 갈등이 있었고
쓰레기 종량제 봉투에 담아 내놓으면 반장이 차로 실어 내기로 한 후
쓰레기 태우는일은 많이 줄었지만
분리 수거와 종량제 봉투에 담아 내는게 아직 익숙치 않아
그냥 마을회관앞에 내놓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늘 치우는게 당연한 일이었지만 바빠서 방치되는 일이 많아지자
동네 사람들이 알아서 치운 모양이다.
어쨌거나 쓰레기 = 태우는 것이라는 공식을 벗어나고
분리수거에 대한 인식이 심어지고 있어 참 보람이 느껴지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반장, 이것도 먹어봐. 혓바닥이야. 이거이 맛있다니까."
"맛있네요."
내 혓바닥 깨물 땐 그리도 아프더니만 남의 혓바닥은 맛도 좋다.
지난 번엔 떡 본 김에 제사 지냈으니
이번엔 모인 김에 동네 반상회를 해야 겠다 싶어 운을 뗐다.
"모처럼 다 모였으니 마을 회의나 하지요. 하실 말씀들 있으시면 하시고요.
그전에 제가 한말씀 올리겠습니다."
쓰레기 문제에 관해 한 번 더 각인을 시키려는 마음에 수십번도 더 한 이야기를 또 했다.
쓰레기를 태우면 환경호르몬이 나오고 그게 자연과 우리몸에 계속 쌓여서 어쩌구 저쩌구......
분리수거 어쩌구 저쩌구.......
"하먼! 그래야지. 서울에 있는 딸네집에 가서 보니까 병뚜껑, 병도 깨끗이 분리하더만.
이제 시골에 사는 우리도 그래해야 하는 건데, 마구 내놓는 집이 아직 있어 문제여.."
"어쨌거나 저희마을을 찾는 외부손님들이 많이 있으니까 쓰레기를 태우는 일이 없도록
해주시고 분리수거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쯤되면 반상회의 절반은 성공이다.
"그 외에 마을과 관련되 말씀들 해주시기 바랍니다."
대게 회의를 하면 이야기가 산으로 가기 일쑤라 가만 놔두면
결논이 잘 나지않거나 혹은 싸우게 되는 경우도 있다. 다들 일리가 있는 이야기들이지만
중간에 짤라서 정리를 해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마을대청소, 깨끗한 정자사용, 새로 이사온분 마을 기금 납부, 마을회관 수돗가 보수공사 등등의
이야기가 오갔고 좋은 결론도 났다.. 어쨌거나 정리가 잘 된 마을회의였다.
회의 말미에 우리마을에 콘테이너를 놓고 사는 이씨 아저씨가 모친상을 당해
문상하는 문제가 논의됐다.
빈소가 거제도라 몇명이 대표로 다녀오기로 했다.
그런 연유로 오늘 5명이 거제도를 다녀왔다.
문상하고 오는 길에 몽돌 해수욕장, 해금강, 바람의 언덕을 거쳐
거제도를 한바퀴 휘이 돌고 통영 어시장에서 회도 먹고
갈치며, 고등어도 사서 집으로 돌아 오니 하루가 꼬박이다.
마을회관에 도착하니 다들 수고 했으니 소머리 고운거 먹고 가라고 하지만
너무 피곤해 집으로 왔다.
사 온 칼치가 맛이 좋았다.
소머리 고운 거는
아마 내일까지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