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오늘은 새로 지은 마을 정자 낙성식을 하기로 한 날이었다.
정자를 새로 지었으니 간단히 절이라도 하고 음식도 나눠먹는 자리를
겸사 겸사 갖자는 뜻에서였다.
어제 아침에 부녀회장님이
" 내일 낙성식 하는데 이장하고 면장을 불러야 된다고들 하는데...."라고 하시길래
"그래요? 제가 연락하겠습니다." 하고는 이장한테 전화를 했다.
"이장님 내일 우리 마을 정자 낙성식을 갖습니다. 이장님하고 면장님을 모시고 싶은데...."
"그래요? 그럼 면직원들 다 오라고 할까?"
"예? 아니 그게 아니고....면직원이 몇명이나 되는데요?"
"한 2-30명 정도 되지"
"아, 그러면 좀 곤란합니다. 그냥 면장님만 모셨으면 합니다."
"그래요, 알았어요"
마을회관에 모여있던 동네사람들에게 이장하고 면장님이 내일 오기로 했다고 말하자
다들 걱정이 태산이다.
"돼지머리하고 떡만 하려고 했는데 음식을 더 준비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렇지! 면장을 불러 놓고 떡만 내 놓을 수 없지...."
논의 끝에 닭을 6마리 잡기로 했다.
집으로 돌아와 내일 할 일을 준비하고 있자니
다른 동네사람한테서 전화가 왔다.
"반장! 내일 면장을 부를 이유가 없는데 왜 불렀어?"
"동네 건물이 새로 섰는데 그자리에 면장이 오는게 뭐가 이상합니까?"
"아니, 정자는 산림과 돈으로 지은 거니까 산림청장을 불러야지 면장을 왜 불러?"
"......그래도 이왕 초대를 한 거니까 다시 오지 말라고 할 수 없으니 그냥 그래 하지요."
"글쎄... 그럼..반장이 알아서해"
작은 동네라도 말이 많다.
밤사이 폭우가 온다는 뉴스도 있고
낮엔 비가 올 것이라고 하는데
음식하랴 손님 맞으랴 할 생각하니 마음에 하루전부터 부담이 많이 된다.
마을 사람도 그럴 것 같다.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 노인회 총무님을 찾아 갔다.
"아제! 내일 비가 많이 온다고 하니 낙성식을 다음으로 미룹시다.
면장도 온다고 하니 부담도 되고 하니까 날 좋은 날 합시다"
총무님도 기다렸다는 듯이 "그래 그럼 그러자.!!"며 맞장구를 쳤다.
"그럼 유씨 집에 얼른 가서 닭잡지 말라고 해"
유씨집에 급히 가서 보니 가마 솥에 불을 지피고 있었다.
"아재, 미안한데, 내일 행사 취소 됐으니까, 닭 잡지 마세요"
"어, 그래? 알았다 . 금방 불 지폈으니 괜찮다."
이제 이장한테 전화를 했다.
자초 지종을 이야기 하며 내일 행사를 취소하기로 했다고 하자 이장은 역성을 냈다.
"아니 일을 왜 그렇게 해. 내가 면장실에 일부러 들어가서 일정을 잡아놨는데
다시 취소되었다고 이야기를 어떻게 해?"
"폭우가 쏟아 진다고 하니 괜한 자리를 마련하는 것 같아서 취소하는게 나은 것 같아서요.."
"내가 말씀드리기 곤란하니까 그대로 그냥 합시다."
이장이 고집을 부린다.
"일정을 취소하는게 그정도로 입장이 곤란합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예정대로 하지요"
노인회 총무님 집에가서
"이장이 면장님 일정을 바꾸기가 곤란하답니다.
그냥 예정대로 하지요?"
"그래..할 수 없지뭐....그럼 유씨집에 가서 닭잡으라고 해야겠다..."
유씨 아저씨집에 전화를 했다.
"아제! 닭 다시 잡아야겠습니다. 내일 면장님 일정을 바꾸기가 뭐해서 오기로 했습니다."
"어, 그래. 알았다. 다시 불지필께!"
부녀회장님 한테도 내일 다시 장보러 가야겠다고 알리고
집으로 오는데 이장한테서 전화가 왔다. 아까와는 달리 차분한 목소리다.
" 그래, 부면장님하고 의논을 해 봤는데.....호우특보가 내려졌는 상황이라
면장님이 여기 저기 다닐 곳도 많은데...정자 낙성식 하는데는 그리 급한 곳이 아니니까,
식을 다음으로 미루는 것도 무방할 것 같다고 하네.."
"아, 참 내.! 또 불지피라 해놨는데....
예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행사는 취소하고 다음에 날잡아 연락드리겠습니다."
유씨 아저씨 집으로 전화 했다.
"아제! 닭 모가지 아직 안비틀었지요? 닭잡지 마세요"
명이 긴 닭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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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는 거며, 돼지머리며, 닭잡는 거며 다 취소했지만
맞춰놓은 떡은 취소 할 수가 없어 오늘 아침 떡을 찾아 마을 정자에 갖다 놓았다.
조금 있자니 전화가 왔다.
"반장, 떡 먹으러 와"
가서 보니 정자에 마을 사람들이 다 모였다.
그 가운데 상이 펴져 있고 떡상자가 올려져 뜯지도 않은 채 그대로 있다.
"아니, 떡을 갈라 드시지 왜 그냥 두고 계십니까?"
총무님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신다.
"떡도 있고 사람도 모였으니까 그냥 절이나 하고 낙성식을 해버리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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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에는 돼지머리도, 과일도, 산나물도, 마른 명태도 없이
떡과 매실주 한 병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야 말로 "떡 본 김에 제사 지내는" 격이다.
결국 수박한덩이를 더 얹고 향을 찾아 피우고
동네 최고 어른이 잔을 올리고 다같이 재배하고
떡과 수박을 갈라 먹는 걸로 낙성식은 끝이 났다.
동시에,마을 노인네들 모두가
날 좋은 날 면장님을 다시 모셔야 하는 부담도 훌훌 털어버렸다.
"모인 김에 점심도 먹자고"
"닭이나 삶아 먹자!
"유씨 아저씨, 닭 잡아 오이소"
"이번엔 틀림 없제? 확실이 털 뽑는다?"
그놈의 닭들.....
꿈자리가 참 사나웠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