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도 짧고 추운 겨울날엔
아궁이에 불 넣어 등따시게 하는 일과
맛 난 거 먹고 배불리는 일 외엔 그리 일이 많지가 않다.
맘 먹고 먼지 가득한 짐들이 이리 저리 쌓여 있는 다락방을 정리하기로 했다.
손을 댄지 몇일이 지났지만 깔끔하게 정리된 다락은
그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있다.
이 겨울의 중간엔 끝이 날 것이다.
쌓여 있는 짐들 중에 정리되지 않은 사진과 앨범들이
우리들을 오랫동안 잡아 두고 놓아 주지 않는다.
지리산으로 들어오기 전의 모습,
전통혼례로 치러진 결혼 사진,
아이들 어릴 때 모습,
이집 저집 전전 할 때의 모습..
모두가 오랜 시간이 지나서일까
가슴에 뭔가 모를 뭉클함이 일렁거린다.
그 중에서도 집사람이 직장다닐 때의 사진이 유난히 눈에 들어온다.
공무원의 신분으로 자기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이 좋아 보인다.
당시 일도 잘한다고 공로상도 받았으니
그 자리에 지금까지 계속 앉아 있었다면
지금 아마도 아주 좋은 대우를 받는 직장여성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우스게 소리 반, 진담 반으로 하는 소리지만,
그 때 결혼 3달 만에 직장 그만두게 하지 않고 계속 다녔다면
아마 지금 쯤 나는 놀고 먹는 팔자 좋은 한량이 되어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다락의 책들을 정리하던 중에
이전에 받아보던 "좋은 생각"이란 책이 있어 한 페이지을 펼져 읽는 중에 이런 내용이 나왔다.
어느 스님이 자기 스승님 이야기를 하면서
스승님은 소포나 꾸러미가 끈으로 묶여 있는 걸 풀 때
그 끈을 가위로 싹둑 자르지 못하게 하셨다.
시간이 걸리고 힘들더라도 매듭을 손으로 풀게 하셨다.
사물을 대할 때의 그런 행위가
마음의 문제나 사람간의 꼬인 문제에 직면해서도
결국 그렇게 가위나 칼로 자르듯이 매정 하게 된다고 하시며
사람사는 일은 어렵고 힘들지만
하나 하나 다치지 않게 풀어나가야 한다는 가르침 때문이었다.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내용이 아닐 수 없다.
젊은 혈기 팔팔 한 시절, 정도가 아니다 싶으면 단칼에 잘라버리는 행위가
결단과 용기라 생각했지만
돌아보면 차근 차근 풀어 나갔어야 하는 일들도 많았으며,
지금도 앞으로도 더욱 그럴 일이다.
어쨌거나 가득 쌓여 있던 짐들이 제자리를 찾고 다락은 정리가 될 것이다.
다락의 짐 만큼이나 가득한 지난 삶들의 과오와 성과들...
그 또한 정리가 될 것이다.
그러면 사는 것도 질서가 잡히고 단정해질 것이다.
찬 겨울 공기 속의 이 뜨끈한 아랫목과 맛난 하루 세끼에 감사할 따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