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집사람 혼자서 버스를 타고 시험장에 갔다.
운전면허 학과 시험이지만 옆에서 보기에 제법 오랫동안
열심히 공부하는것 같았다.
3시 30분부터 시험이니까 지금쯤 결과까지 나왔으리라
아이들은 언제오느냐, 보고싶다는 자꾸 물어보고
나도 결과가 궁금하다.
가까운 사람의 시험을 옆에서 지켜보고
결과를 기다리다 보니
가슴속에 지워지지 않는 어떤 하루가 생각난다.
그날은 내가 대입 시험을 보는 날이었다.
학력고사라고 했던 이 시험을 통해 대학 진학의 열쇠를 쥐게 된다.
나는 부산에서 유학을 했다.
국민학교 6학년부터 고등학교 3년까지 7년간,
부모자식이 서로 헤어져
한솥밥을 같이 먹지 못하고
어버이는 어버이대로 자식은 자식대로 힘들게 고생한
7년간의 노고를 보상받아야하는 날이 바로 그 시험일이었다.
그간의 고생을 뒤로하고 마지막 시험을 보고 있는 자식을
시험장밖에서 기다리는 아버지의 심정을 그 때는 잘 알수 없었지만
자식이 생기고 키워보고서야,
집사람의 보잘것없는 운전 면허 시험을 옆에서 지켜보고서야,
그 심정이 조금씩 실감나게 가슴에 와닿는 것이다.
아버지는 시험이 끝나고 나오는 나를 붇잡고 시험 잘쳤냐고 물으셨고
내가 아무 말이 없자
안타까운 표정으로 애원하듯이 \"말이라도 좀 잘쳤다고 해라\"고 하셨다.
살아오면서 아버지로부터 들어본 말 중에서
당신의 마음을 겉으로 드러낸 가장 애절한 한마디였다.
그 말 바탕에 깔린 애절함은 두고두고 가슴에 남아있다.
많은 부모 자식들이 그랬을 것이고
지금도 여태 그렇겠지만
아버지는 그날 하루에 지난 날의 모든 걸 건 것처럼 살아왔으리라
지나고 나면, 살다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하루에
집단적으로 체면이라도 걸린듯 모든 걸 쏟아붓는다는 사실은
이 사회 비극의 상징이다.
.....
나는 내 자식들에게 특별한 기대를 갖지 않으려고 맘먹는다.
혹여 어버지가 내게서 느낀 어떤 기대와 좌절을
나는 내 아이들에게서 느끼고 싶지 않아서이다.
그리고 그 기대가 자식에겐 또다른 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저 잘나지도 않고 못나지 않으면서
스스로 만족감을 느끼며 살아가기만을 바랄뿐이다.
이 또한 무리한 기대일지 모르지만 말이다.
(어제밤 내 꿈대로 집사람은 84점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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