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동안 돌보지 않던 밤밭을
올해부터는 손을 보리라 마음 먹고
올해 장만한 예초기를 짊어지고 산으로 갔다.
가슴 높이로 자란 풀들이
"나, 주인 없음." 하며 서있다.
혹은 " 주인이 무심해.." 하는 듯 하다.
곳곳에 그 동네 사람들이 버려 놓은 듯한 이런 저런 폐기물도 눈에 띈다.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작년 부터는 칡이 침범해 밭이 숲으로 변해가고 있는 상황.
한 이틀 정도 왱왱거리며 풀을 베어 내니 겨우 사람 다닐 길이 난다.
밤나무 밑으로 들어 서니 왠걸?
깔끔하니 베어 낼 풀도 없다.
이건 필시 누가 손을 본것이다.
주인이 와보지 않으니 처음엔 부지런한 사람이 와서 밤을 주어 가더니
누군가가 이젠 아예 가꿔 먹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떨어진 밤을 줍고 있자니 인기척이 난다.
저만치서 할머니 한분이 밤을 줍고 계신다.
"할머니, 뭐하세요? " 하고 물으니
"누구요"하고 되묻는다.
"이 땅 주인입니다. 할머니 왜 남의 밤을 줍고 계세요?"
"엉? 우리 아들이 이 땅이 아직 큰아버지 앞으로 되어 있다고
올해부터 가꿔먹기로 했다고 하던데?"
어이가 없어 아들과 통화를 하니
등기이전을 안해 간줄 알았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땅주인이 따로 있다는 건 동네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인데
주인한테 한마디 상의도 없이 주인행세를 하려 한 것이 괘씸했지만
한편 곰곰 생각하니
길가에 뒹구는 돌맹이 마냥 내팽개쳐준 내 잘못이 더 큰 듯 하다.
주인이 주인행세를 못하면 객이 주인노릇을 하려 한다는
엄연한 세간사를 미쳐 챙겨보지 못했다.
"가꾸지 않는 자는 누리지 못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