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오후 비가 많이 온다.
식구들 모두 목욕탕에 가기로 했다.
한 시간 동안 씻고 나오기로 하고 남탕 여탕으로 들어갔다.
비오는 일요일 치고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스님마냥 머리를 깍은 영감님 혼자 뜨겁지도 않은 탕에 앉아 있다.
눈을 지긋이 감고 참 맛나게 노래를 흥얼거리고 계신다.
저렇게 맛나게 부를 수 있는 노래가 내게는 있나 하는 생각이 퍼뜩 든다.
운학이, 우성이 녀석은 대충 비누로 샤워를 하고
탕에 앉아 있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이내 샤워기 끝을 풀어내고 물총을 쏘며 물장난을 시작한다.
그만 하라는 고함을 두어번 듣고는 냉탕에 들어가 수영질을 해댄다.
우성이를 불러 앉혀 때를 밀기 시작했다.
아까 그 영감님이 옆에서 보시더니 말씀하신다.
"고놈 때 미는데 가만히 잘도 있네. 우리 애들은 아프다고 난리였는데..
참, 그렇지! 지금 생각해보니 살살 밀면 될 것을 박박 밀어댔던 것 같 같어."
목밑에 새까만 때를 살살 벗긴다고 벗겼는데
씻기고 보니 목이 벌겋다.
수염도 깍도 머리도 씻고 두어번 비누칠을 하니
몸도 마음도 날아갈 듯하다.
하기 싫어도 하고 보면 기분좋은 것이 목욕이다.
홀에 나와 몸을 닦고 옷을 입고 있자니
아까 그 영감님도 나오신다.
홀에 있는 텔레비젼에 남녀가 짝을 짓는 오락프로가 진행중이었다.
영감님이 보시고는
"할일이 없고 시간이 남으니 저러겠지 " 하시더니
"하기야 늘 저렇게 살지만 않겠지. 공자님도 그러셨지.
색이든, 도박이든, 노름이든 잠깐 재미로 즐겨야지
욕심부리고 살다가는 나이들어늙은 황소처럼 될뿐일이다.\"며
느닷없는 법문이 줄줄 이어 진다.
"옛 선인들 말씀들이 다 맞는 말씀이요.
남의 허물도 오래 기억말고 자신의 허물도 오래 기억말고
바람처럼 구름처럼 살다 가라 얼마나 맞는 말씀이요?
또 이런 말씀도 있어요.
진리의 눈으로 보면 사는 일도도 즐거움이지만
죽는일도 즐거움이다.
내가 암에 걸렸어도이런 말씀때문에 맘편하게 살아가고 있어요.
남탕문을 열고 나오니 다을이와 집사람이 기다리고 있다.
집으로 돌아와 창문밖으로 펼쳐진앞산 운무를 보며 물었다.
"바람처럼 구름처럼 사는게 어떻게 사는 거지?"
정말이지 궁금해서
앞산 허리를 감싸고 뭉게 뭉게 피어오르는구름을 한참을 쳐다 보았다.
창문 밖 앞산에 바람도 있고 구름도 있지만
바람같이 구름같이 사는게 어떤 것일까 여전히 궁금하다.
막힘없이 걸림없이 산다는 건 나의 지식이고 글자일뿐
내 삷 속에 바람같은 구름같은 삶의 살아있는 느낌은 아직 감이 잘 안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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