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기 엄마랑 저녁 먹으러 올라와"
뒷집 배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하던 일을 멈추고 올라가보니 동네사람이 이미 모두 모여 있었다.
자리를 비켜주며 어서오라고 반겨주었다.
아주머니 칠순 생일이라 했다.
동네사람 뿐만 아니라 아들, 딸 ,며느리, 사위, 손자 손녀가 다 모였다.
단촐한 잔칫상이 부담스럽지 않았고 권하는 매실주도 넙죽넙죽 잘 받아 마셨다.
오랜만에 같이 한 자리라서 서로가 반가웠다.
안보이는 사람들은 벚꽃축제 전야제구경갔다고 했다.
큰사위 차서방, 둘째 사위 배서방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술자리에서 배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내나이 일흔 둘인데 내 사주엔 일흔 넷에 무학등선한다고 했으니, 제정신 가지고 살아갈 날이 몇년 안남았어. 인생이 초로(초로)와 같애. 한순간이야."
내게 또 말씀하셨다.
"마을 이름같이 道心으로 살아야 돼..더불어 같이살아가면 아무 문제없어"
차서방의 사회로 아들, 며느리, 사위, 친척,동네 사람등이 돌아가며 축하 노래가 이어졌다.
칠순을 맞이한 사람도 잔치를 준비한 사람도 초대받은 사람도 부담없는 고작 큰 상 두개 펼쳐 놓은 칠순 잔치였다.
잔치라기 보다는 그냥 즐거운 저녁 시간이었다.
저 아래 10리 벚꽃이 만발하듯 하루저녁, 살아온 70년을 흥겹게 노래하고 취하는 시간이었다.
순간 순간 생의 한가운데 서 있음을 느끼며
아! 이렇게 살아야겠구나.
이게 살아가는 참맛이구나.
이게 道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 흥이 오르고 소변보러 마당에 나왔을 때 집사람이 데리러 올라왔다.
부산서 친구가 왔다고 했다.
사람들이 대문을 나서는 나를 보고 소리를 질러댄다.
"백 샌 가면 안돼.더 놀다 가" (샌은 생원의 줄임말이다.김씨는 김샌, 이씨는 이샌이라고 한다.)
"금방 올깨요"
멀리 부산서 반가운 친구가 왔다.
앞산에 가 본다고 집을 나선 것이 여기 지리산까지 왔다고 했다.
차를 같이 마시며 부담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조금전 배선생이 말씀하신 더불어 산다는 말이 생각났다.
서로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 더불어 사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친구가 돌아갈때까지 노래소리는계속됐다.
벚꽃이 질 땐 허무하게 떨어진다.
그래서 피어 있을땐 더없이 화사한 걸까...
낙화를 앞둔 벚꽃의 심정이나 풀잎의 이슬 같은 초로의 여생을 보내는 동네 노인네들의 심정이나 이 저녁을 혼신의 힘으로 노래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왕 붙잡을 수 없는 날들이라면 벚꽃같이 화사하게 잔치집의 사람들 같이 흥겹게 인생을 살아 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