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보름이었다.
우리동네는 달집을 만들지 않는다고 했다.
서운한 마음에 근처 동네를 돌아보니 용강마을과 모암마을이 달집을 만들었다.
친구녀석이 농산물 쇼핑몰 자료로 쓰기위해 사진 및 비디오 촬영을 하러 멀리 부산에서 왔다.
저녁 준비를 하고 있는 집사람을 끌고 나갔다.
몸이 피곤하다며 집에 있겠다고 했으나 후끈한 불기운과 흥겨운 분위기에 젖어 보라고 억지로 끌고 나갔다.
집을 나서는데 마치 도시에서 저녁에 시내 쇼핑나가는 기분이었다.
오랜 만에 느껴지는 설레임에 집을 나서면서부터 흥이 났다.
용강에 도착하니 어둑어둑 해진 동네 논 한 가운데 커다란 달집을 지어놓고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와있었다.
달집 앞에는 돼지머리가 준비되어 있었고 그 옆엔 돼지고기과 과일 떡 음료수 술등이 푸짐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술과 음식을 이미 서로 나눈 터라 분위기는 이미 달아 올라 있었다.
어둠이 짙게 깔리자 더욱 사람들의 열기는 뜨거워지고 동네 어른이 제일 먼저 술을 올리고 절을 하는 것을 시작으로 저마다 절을 올리고 울 한해 마을과 개인의 평안한을 빌었다.
그사이 돼지 입과 코꾸멍에는 만원권이 꽉 찼다.
"아빠, 사람들이 돼지 코에 돈을 꼽아!" 하며 다을이가 신기해 했다.
'아! 급하게 오느라 지갑을 놓고 왔다.'
남의 잔치에 그냥 놀고 가는 것이 조금 미안하다.
의식이 끝나자 먼저 폭죽을 터뜨리고 쏘아 올리는 것을 필두로 달집에 불을 댕겼다.
대나무가 타면서 빵빵 소리를 내며 터지고 불길은 하늘로 솟구쳐 올라 보는이의 심장을 뛰게 한다.
수만개의 빠알간 불씨들이 끝없이 하늘로 빙빙 돌며 날아 오르는 것을 올려다 보노라니 내가 하늘로 날아 오르는 것 같았다.
불에 취해 한해 소원도 빌지 못하고 말았다.
풍물꾼들의 흥겨운 가락과 함께 사람들은 달집을 빙빙돌며 춤을 추고 놀았다.
날이 흐려 달은 코빼기도 안비쳤지만 어느누구 토다는 사람 없었다.
아이들도 신이 났다.
사다 놓은 바카스를 마시는 놈, 돼지고기를 집어 먹는놈, 떡을 먹는 놈, 과일을 먹는 놈, 쥐불놀이를 하는놈 저희들끼리 알아서 잘도 놀았다.
이날 잔치를 위해 마을 사람들은 하루 종일 준비를 했을 것이다.
남자들은 달집 지을 소나무 대나무을 준비해서 하루종일 달집을 지었을 것이고 전기가설도 하고 젊은 사람을 시켜 폭죽과 돼지고기를 준비하게 했을 것이다.
아낙들은 돼지고기를 점심 나절 부터 삶았을 것이고 누구네 집에서 잘익은 김치도 준비했을 것이며 떡집에 떡도 시켰을 것이다.
서로 서로 같이 준비하고 같이 즐기며 흥겨운 분위기의 소용돌이 속에 서로간에 쌓였던 서운한 감정들은 털어버리고 줗은 정은 더욱 키워 나간다.
미운정 고운정은 그렇게 길러진다.
이런 자리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면 더 반갑다.
우리집 지을 때 일한 목수, 미장에서부터 학부모, 카센터 주인아저씨, 같은 업종의 제다업자 등등..
반가운 인사와 술잔을 나눈다.
더 놀다 가라는 권유를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먼 미래에도 이런 마을 놀이가 계속 되었으면 한다.
저 아이들에게 협동의 의미와 그 힘 저 신명과 흥을 통해 몸과 마음에 쌓인 것을 털어내는 법이 대물려 졌으면 좋겠다.
오늘 즐겁게 뛰어 논 저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서도 저기 저자리에서 같이 힘을 모아 달집을 짓고 서로에게 마음이 담긴 한잔 술을 권하는 그런 날들이 끊어지지 않았으면 정말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