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마을의 공사(公事)가 있었다.
한 해 동안의 마을 살림살이를 정리하는 날이다.
마을 공동체가 1년을 지내면서 얼마의 돈이 들어오고 나갔는지 반장이 마을 사람들에게 보고하는 자리이면서 동시에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 음식과 술을 나누며 한 해 동안의 서로의 노고에 감사하고 회포를 풀며 보다 나은 내년을 기약하는 자리다.
이사온지 얼마 안된 나는 새 식구로서 인사를 하는 자리였다.
새로운 마을 식구로 젊은 사람을 받아 들이는 마을 노인들에게서 젊을 우리에게 거는 기대와 반가움을 느낄 수 있었다.
마을 공사 음식으로 요즘이 제철인 섬진강에서 잡은 눈치 회와 밭에서 뜯어온 배추, 녹차잎으로 만든 짱아찌, 잘익은 매실주가 준비되었다.
오후 나절이 되자 모두들 얼큰허니 기분이 좋아져서 노래가락이 돌고 돌았다.
케케 묵은 장구로 노래가락에 마추는 유행가 장단은 정말 감칠났다.
굿거리 자진모리 휘모리등과 같은 전통 가락과는 전혀 다른 뽕작이라는 노래에 맞는 이른바 휴행가 장단이 있는데 그 맛이 일품이다.
점심 때 시작된 모임이 해가 저물기 시작하자 절정으로 치달았다.
평상시 거북이 마냥 천천히 조용히 생활하던 70줄의 노인네들이 흥에 겨워 노래와 춤으로 신명을 내고 있었다.
나보다 한살 많은 반장이 말했다.
"지금쯤 슬슬 도망을 가야돼, 10시 넘을 때까지 이렇게 논다. 도망가는 것도 능력이여"
이 노인네들이 우리 나이땐 놀았다 하면 사흘이고 길게는 보름동안을 계속 놀았다고 한다.
신명(神明)이다.
우리에게 없는 우리가 물려받지 못한 신명이 그분들에겐 있다.
한 잔의 술이면 장소 불문하고 자신을 풀어내는 신명이 부럽다.
기계 반주와 장소가 되어야만 겨우 흥이 나는 우리세대가 물려 받지 못한 신명....
할아버지 한분이 술에 취한채 말씀 하셨다.
"기분나고 흥이 나는 건 나이와 무관하단 말이여, 왜 나이들었다고 나한테는 노래안시키는기라?"
나이와 무관하게 가슴은 더 뜨거운 이들에게 신명나게 사는 법을 배우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