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가뭄으로 동네 상수도 물이 모자라서 어제는 동네 상수도 점검을 했다.
각 마을 마다 동네 뒷산의 계곡에서 물을 끌어와서 동네 물탱크에 저장해서 이용한다.
동네마다 물 사정은 다르다.
물이 넉넉한 동네가 있는 반면 약간 모자라는 동네도 있다.
이곳 도심은 물이 넉넉한 편인데 밤에 동파방지를 위해 집집마다 틀어놓는 물 때문에 일부 집에 물이 모자라는 모양이다.
도심마을은 취수원이 두 곳인데 한 곳은 700고지에 위치한 무지개골이라는 곳에서 다른 한 곳은 가까운 중촌 계곡이다.
그 높은 곳에서 마을까지 어떻게 배관을 했는지 놀랍다.
크고 웅장한 지리산 자락에 다닥다닥 모여붙어 살아가고들 있는모습이 마치 개미들이 땅을 파먹고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고로쇠 나무에서 수액을 빼먹고 밤나무 녹차나무로 돈 해 먹고 빼어난 산수경관도 팔아 관광으로 먹고 살고 재첩도 잡아 먹고 개미보다 더 알차게 잘 파 먹고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개미보다 더 고달프고 힘들게 살기도 한다.
상수도 일을 마치고 일찌감치 집으로 들어와 아궁이에 불을 넣으려고 할 즈음 동네 최연장자이신 진표 아버지가 오셨다.
발그랗게 얼굴이 달아 오르신 것으로 봐서 마을회관에서 또 술판이 벌어졌나보다.
남자들이 상수도를 손보는 동안 동네 아낙들은 떡국을 끓여 점심을 먹었는데 자연스레 술판이 벌어진 모양이다.
"자네 뭐하는가"
"불 좀 때려고요.."
"일만 하고 가는게 어디 있는가? 아주 안 바쁘면 가서 찡겨서 놀아. 그래야 내맘이 좋아"
노인네께서 몸소 오셨는데 안 가 볼 수 없다.
아궁이에 한아름 나무를 넣어 놓고 마을 회관으로 향했다.
말이 마을 회관이지 다 무너져가는 옛날 초가삼칸집을 마을회관으로 쓰고 있다.
어둑해진 회관 마당으로 희미한 불빛과 함께 음악소리가 요란하게 새어 나온다.
춤판이 벌어져 이미 분위기는 절정에 이른 것이다.
건수를 놓치지 않고 즐기는 동네사람들이라 오늘도 예외는 아니다.
나를 보자 반갑게 방으로 끌어들이며 매실주를 권한다.
"손이 다쳐서 술은 안 됩니다."
"아, 이사람아 저양반도 먹는데 젊은 사람이..괜챦아 마셔!"
거기엔 기브스한 영감님이 열심히 춤을 추고 있었다.
"...예"
"이게 4년된 매실주여. 세잔은 마셔"
마구 권하는 통에 공복에 연거푸 두잔을 마셨더니 취기가 금방 올랐다.
방은 아침부터 불을 넣어 방바닥은 뜨끈 뜨끈했고 오래된 구닥달이 에로이카 전축에서 김연자가 불러대는 노래에 마춰 춤추는 동네 사람들의 열기는 더 뜨거웠다.
방바닥이 뜨거워서 뛰는 건지 흥겨워 뛰는 건지....
"고맙네! 이렇게 와줘서"
"우리는 이렇게 스트레스를 풀어"
"우리동네는 이렇게 가족처럼 어울려 노니까 이해하게"
"나이든 우리가 실수를 하더라도 젊은 자네가 이해하게"
60줄의 노인네들이 듣기에도 송구한 말과 함께 집집마다 들고 나온 매실주를 권하는 통에 나도 술에 취하고 음악에 취하고 말았다.
한 두사람 슬며시 사라졌다 다시 나타날 땐 매실주를 안고 들어온다 집집마다 대체 얼마나 많은 매실주를 담아놓았는지 궁금하다.
덕분에 오랜만에 취하고 웃으며 즐겁게 춤추고 놀았다.
개미같이 살아가는 마을 사람들의 겨울나기가 참으로 즐겁다.
그들이 누리는 이 시간이 참 소중해 보였다.
서로 서로 엄청난 즐거움과 활력을 얻는 듯 했다.
낙천적이고 즐겁고 친화력이 소용돌이치는 개미들의 술판이었고 춤판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