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뒷산 물탱크에서 동네로 내려오는 수도 배관 한곳이 터졌다.
물이 새어 나온다고 하여 올라가 물이 스며나오는 곳을 파 보니
배선생님 댁으로 들어 가는 배관이 금이 가 있었다.
화개철물점에 가서 부품을 사 깨진 부분을 잘라내고 새로 연결을 했다.
저녁에 부품사고 남은 거스름돈을 드리러 댁에 들렀더니,
최씨 영감님과 반주를 나누시던 배선생님께서 나를 보시고는
안그래도 잘왔다는 듯 반갑게 자리를 청하신다.
"자네한테 믿고 맡겼네만 어쨌든 고맙네, 수고했어"
수도 배관일이 고맙다시며 매실주와 저녁밥을 권하시길에
집에 차려 놓은 저녁상은 잊은채 저녁과 술을 같이 해결했다.
동네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도심마을의 지난 이야기도 나누고 앞으로 일어날 변화도 예상해본다.
배선생님의 집안이 도심마을에 자리를 잡은지는
200년이 되었다고 하신다.
"우리 자식들은 여기 들어와 살지는 못할 것 같다.
아마 내가 마지막이 될 것같애."
도시에 나가 살고 있는 자제분들 이야기다. 사실인즉 맞는 말씀이다.
스쳐 지나며 하는 말이지만
말끝에 왠지모를 서글픔이 베여 있음이 느껴진다.
"10년안에 동네 앞을 지나 미륵쟁이로 가는 길이 2차선이 될 거이구만."
이미 오래전부터 군에서 계획을 가지고 있으며 시기가 되면
언젠가는 길이 포장이 될것이라고 말하신다.
"길이 포장되면 동네 땅값이야 오를지 모르지만 산위로 오르내리는
차때문에 동네가 지금처럼 조용하지는 않을 겁니다.
또 여름이 되면 지금이야 길이 좁아 사람들이 오고싶어도 못오지만
길이 넓어지면 계곡을 찾는 사람도 엄청 많이 올겁니다."
내가 한마디 하자 사모님도 한마디 하신다.
"그러면 계곡 다 버려놓지"
"하기야, 옛날엔 개울에 가면 피라미는 지천에 늘렸고
메기,꺽지,짱어도 흔했는데 지금은 씨가 말랐어"
"왜 그렇게 됐습니까?\"
"여름에 물이 줄어 고기들이 한데 모이면 할 일 없는 놈들이 밧데리로
지져서 씨를 말리니까 그렇지"
나이든 사람들의 잠재의식 속엔 개발지상주의가 있다.
길이 넓어지고 포장이 되고
큰 건물이 들어서고
사람들이 많이 오면
동네가 발전하고 뭔가 경제적인 도움이 될거라는 잠재의식 속의 공식이다.
하지만 현실은 이미 그렇지 않게 바뀌었다는 것도 역시 피부로 느끼고
있다.
그래서 요즘엔 몇마디만 더 깊게 이야기 나누면
개발의 허상을 쉽게들 수긍을 하신다.
이야기를 이어가시며 던지는 한마디가 가슴을 무겁게 누른다.
"10년뒤면 우리야가고 없고 자네들이 동네를 이끌어 가고 있을 것이니까
그 때가서 자네들이 알아서 처신하게. 반대를 하든지, 찬성을 하든지.."
10년뒤의 일이지만 당신들이 없는 동네를 생각하니 갑자기 가슴이 휑하니
쓸쓸해진다느릿 느릿 한가롭게 사시는 노인네들이 없다고 상상하니 갑자기 삭막해지는 느낌이다.
그리고 우리라는 존재도 외지에서 들어온 변방의 존재에서어느새 지킴이의 자리에 와 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요즘들어 동네 사람들이 보내고 있는 노년의 삶을 바라보는 우리 부부의 시선은 예사롭지 않다.
아이들의 삶이야 거기서 거시지만
나이가 늘수록, 특히 노년에들어서서의 삶은 극명하게 차이가 난다.
주변의몇안되는 노년의 삶만 보더라도 쉽게 알수 있는 사실이다.
우리가 중년의 초입에 벌써 노년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 보는 것은
빗살같이 달려가는 세월 끝에 좋은 노년을 보내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더 급한건 당장의 삶을 제대로 잘 선택해서 살기 위해서다.
수없이 많은 고민스러운 결정을 내리는데 지표로 삶기 위함이다.
10년후 20년후를 내다보며 내디디는 삶이 당장의 효율성이나 정확성은
떨어질지 모르겠지만
전체적인 삶의 방향은 잡기는 더 쉬울 것이다.
"이 동네는 허영심으로 사는 사람은 못버티고 나가는 동네야.
우리동네 도심마을은 말그대로 道心으로 사는 사람이 흥하는 동네야.
자넨 참 잘 이사온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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