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몸살을 앓고 난 다음날
몸살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동네 마을 회관 창고 공사를 시작한다고 한다.
오랜 만에 동네 엠프소리다.
"주민 여러분께서는 아침 식사를 마치는 대로 삽을 들고
회관 으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겨우 몸을 일으켜서 회관에 나가 보니 몸살이라고
가만 있을 수가 없는 상황이다.
젊고 건축 경험이 많다는 이유로 본의 아니게 기술자노릇을 해야한다.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일엔
이런 저런 말이 많게 마련이다.
특히, 사람들이 지나 다니는 길가에 벌려 놓은 일엔
길가는 사람까지 한두마디씩 던지고 간다.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이것부터 해야 한다 저것 부터 해야 한다.
이거는 왜 이리했냐 .저러는 왜 저리 했냐.
벽이 비뚤어 졌다. 기울어 졌다. 각이 안맞다.
변기는 왜 이걸 했냐.
문을 왜 이리냈냐.
지붕은 이래야 한다. 아니다. 저렇게 하는게 돈이 적게 든다.
자재를 더 사야 한다. 산에서 나무를 베어 오면 된다.
그게 더 일이 많다. 동네 돈이 없으니 그게 낫다.
.....................
하지만 별스런 일은 아니다.
일을 시작해서 마치기까지 늘 있는 과정일 뿐이다.
말하자면 이런 저런 말잔치는 동네 초상이 나서 묘를 쓰는 과정에도 있는 일이다.
동네 여자들은 새참을 부지런히 만든다.
기본 베이스는 매실주다.
찬으로 라면, 돼지콩나물국 등이 나오고
집집마다 배추, 무우, 김치 된장등을 조금씩 가지고 나온다.
어제는 누구집 진돗게가 산에서 잡았다는 고라니 고기가 나왔다.
누구는 산짐승이라고 입에도 안되지만 그 맛은 일품이다.
고라니를 잡은 개한테도 한밥그릇 먹이는 것도 잊지 않는다.
맛을 보여야 다시 잡아 온다고 한다.
오늘은 전어 장사가 동네에 왔다.
냉동전어다. 회를 쓸어 무우와 버무려 회무침을 만들어 먹었다.
맛나게 많이 먹고 밥까지 비벼 먹었는데
오후 늦게부터 배가 살살 아픈게 아무래도 전어회가 싱싱하지 않았나 보다.
점심을 먹고 나면 상을 물리고 몇안되는 동네사람들이 둘러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 꽃을 피운다.
창문 너머 동네 뒷산엔 노란 단풍이 햇살과 함께 방안을 따뜻하게 감싸고 있다.
올해 단풍은 유난히 곱다.
"단풍이 곱게 들면 좋은 내년엔 시절이 좋다네."
정말 내년시절이 좋았으면 좋겠다.
텔레비엔 전국 노래자랑이 한창이다.
초대 가수가 목청껏 노래를 부른다.
"사랑의 그 약속을 내팽개치고
떠나가는 여자야
울 줄 알았지 착각하지 마
너를 잡을 줄 아냐
이 세상에 어디 여자가 너뿐이더냐
너보다 착한 여자 너보다 고운 여자
만나 살면 되는걸
그래 가거라 행복해라
빠이 빠이 빠이 빠이야---"
오전 새참부터 마신 매실주로 얼굴이 발거래진
진표아버님이이 노래을 듣고 계시드니 게섬츠레 웃으시며 혼자말씀처럼
한마디 던지신다.
"그래 , 저리 살야하 하는데..."
아마도여태 잊지 못한 젊은 시절 떠나간 사랑이라도 있으신가 보다.
점심을 먹고 나니 졸음 몰려 온다. 방 한 구석에 굴러다니는 목침을 베고
누우니 동네 사람들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동네 노인네들 웃는 얼굴이 곱게 치장한 가을 단풍과 잘 어울린다.
곱게 늙은 미소는 단풍같이 편안하고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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