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생활에 뱀은 불청객이다. 이사오기 전에 살던집의 담벽속에서 나오는 뱀)
하루종일 비가 내렸다.
어제 베어온 쑥대에서 쑥꽃을 어제 밤과 오늘 오전 내내 훓었다.
좁쌀 만한 꽃을 일일이 손으로 훑어내는 일이 워낙 손이 많이 잡혀
올해는 동네 아주머니 두 사람에게 부탁해서 같이 하니
금새 끝이 났다.
반복되는 일을 대여섯 시간 동안 지루하게 하다보면
온작 이야기가 다 나오기 마련이다.
이럴 때 듣는 이야기가 재미가 있다.
오늘 주로 한 이야기는 요즘이 산에 밤주우러 다니는 철이라 그런지
뱀에 관한 이야기였다.
젊은 사람이건 나이든 사람이건
이곳 사람들의 뱀에 관한 일관된 관점 하나가 있다.
"독사는 보이면 무조건 죽여라"는 것이다.
독이 없는 뱀은 그냥 봐주더라도 독사는 사람이 희생될 수 있으므로
무조건 죽여야 된다는 것이다.
진철씨 어머님의 독사에 관한 이야기는 남달랐다.
아주머니는 제일 처음 살모사 새끼를 지게작대기로 눌러 죽인 날
심장이 떨려 그날 하루 일을 못했다고 했다.
그 이후로도 독사를 보면 심장이 떨리고 무섭기는 지금까지도 마찬가지지만
저놈을 잡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물려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더커서
무서워 식은땀을흘리면서도 뱀을 기어이 잡는다고 했다.
주로 차밭이 있는 산에서 뱀을 만나는, 직접 뱀을 잡지는 못하고
지게 작대기나 나무 막대기로 뱀을 눌러 도망못하게 한채
근처 산에 있는 사람을 고래고래 소리쳐서 부른다.
사람이 올때까지 뱀을 누르고 있으면
아주머니 몸은 땀으로 흠뻑 젖지만 절대로 놓치지 않는다.
한번은 돌틈새로 들어가는 독사를 본 아주머니는
독사를 잡기위해 땅을 파고 들어갔다고 한다.
직근성이라 땅 깊이 뿌리내린 녹차나무 두그루를 파내고서 바위밑에 숨어 있는 독살를 발견하고 기어이 사람을 불러 잡아 없앴다.
또 한번은 차밭에 있는 원두막에 새가 둥지를 틀어 새끼를 깠는데
키워서 나가는 날까지 보살피기로 맘먹고 있는데
어느날 새끼가 잘있는지 살펴보니 둥지에 뱀이 또아리를 틀고 있었다.
그뱀은 그날이 제삿날 이었다.
이렇게 잡힌 뱀들은 대게 뱀꾼들에게 팔거나
동네사람들이 삶아 먹는다.
폐가 안좋아 늘 기침하는 아저씨에게 많이 갖다 주기도 한다고 했다.
고단백의 양양소를 필요로하는 폐질환에는 옛부터 개소주나
뱀탕이 제일이라고 했다.
뱀은 쳐다만 봐도 무서워 도망간다는 같이온 앞집 아주머니는
처녀때 밭에서 풀을 한움큼 잡아 쥐었는데
뱀에 풀과 함께 같이 잡혀 빤히 자기를 쳐다 보더란다.
놀라 뒤로 자빠져서 뱀잡은 손을 흙에다 문지르고 또 문질러댔다고 했다.
이야기를 듣다보니
전에 살던 목압마을, 돌아가신 가람이 할머니 생각이 난다.
돌아기시기 몇해전 지팡이 짚고 겨우 거동하시는 분이 산으로 가시길래
어디가시냐고 물었더니
"차밭에서 우리 영감이 뱀에 물렸는데, 그놈의 독사 잡아 죽이러 간다"고 하셨다.
독사에 물리신 할아버지는 아직 살아계시고
독사잡으러 산으로 오르시던 할머니는 이제 돌아가시고 안계신다.
화개는 돌이 많아 뱀이 많다.
뱀에 관한 이야기도 많다.
이사온 첫해 뱀에관한 나의 경험 또한 각별하다.
철지난 산중일기지만 다시 읽어 본다.
이사온 첫해의 능구렁이2001년 7월 28일 산중일기
이사온 해(1994년)에 집사람은 첫째를 임신중이었다
시골살림에 대해 잘모른채
"살아보는 것도 괞찮겠다"며 따라붙인 시골 생활의 첫쇼크는
뱀이었다
어느 여름날 저녁에 우리는 마당에 평상을 펴놓고 놀고 있었다
누가 마실 것을 사달라고 해서 나는 가게에 가서 마실것을 사왔다
그런데 마당에 들어서는 순간 이상한 침묵이 느껴졌는데, 이윽고
아내가 하얗게 질려서 뱀이 방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우리가 자는 방은 옛날 초가 삼칸을 그대로 사용했는데
큰 구렁이가 기둥을 타고 마루로 올라가 우리가 자는 신혼 구들방으로
기어 들어 갔다는 것이었다
사실 나는 뱀이 제일 무섭다
다행히 내가 가게에서 돌아 오기전에
같이 앉아놀던 동네 형님이 뱀을 타일렀고(?)
뱀은 천천히 옛날부엌 정지로 통하는 샛문으로 나갔다고 했다
그 자리가 파할 때까지 우리의 생각과 대화의 주제는 뱀이었는데
동네 형님은 \"능구렁이가 안방으로들어갔으니 아주 길한 징조다\"라고
우리를 위로해 주셨고 가시면서 뱀의 천적인 돼지돈(豚)자가 적힌
부적까지 붙여주고 가셨다.
형님이 돌아간뒤
나는 태연히, 복이 굴러 들어온 그방에서 자려고 하였으나
자꾸 이불밑에 그 뱀이 숨어있는 것 같았다
집사람은 무서워 못자겠다고 했다
그래가지고 어떻게 시골 살겠냐며 내가 나무랫더니 집사람은
"무서운걸 우짜노!"하며 울었고 우리는 시멘트 블록으로 지어진
아랫채에서 잤다
아내는 등을 돌랜채 부른배를 안고 울며 잤고
나는 내심 뱀의 위험으로터 벗어난 마음에 그런대로 홀가분하게 잤다
지금 생각하면 그뱀은 복덩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