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갑자기 차가워져 몸과 마음이 웅크려들 즈음 또하나의 작은 즐거움이 있다.
저녁무렵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일이 그것이다. 굼불을 때면 즐겁다.
따뜻한 훈기가 좋고 나무타는 냄새도 좋고
특히 아궁이 속으로 들여다 보는 즐거움이 최고의 즐거움이다.
구들장을 타고 힘차게 승천하는 용마냥 스스로 휘감겨 솟구치는 불길을 보노라면
내가슴에 불길이 치솟는 것 같기도 하다.
하루동안의 번잡한 생각이나 일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불을 지피는 동안은 그냥 나무만 넣고 뜨근한 불길만 즐기면 그만이다.
우리집엔 장작을 때는 구들방도 있도 기름보일러도 있다.
기름 보일러는 손가락으로 스위치 하나만 누르면 만사 오케이지만 구들방은 일이 많다.
구들을 놓을 때부터 산에가서 구들 장과 크고 작은 돌들을 주워오고
황토나 짚같은 것들을 일일이 알아보아야 하는 것도 그러하고,
불을 지피기 위해서는 나무도 미리 해놓고 말려야 한다.
굵고 잘 마른 장작만 있다고 다 되는 것은 또 아니다.
불을 지필 잔가지도 있어야 큰 불을 지필 수 있다.
또 아궁이의 재도 한번씩 치워야 한다.
그런 이유로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 따뜻한 저녁잠자리를 위한 시작에서부터 끝까지의 모든 과정을 느낄 수 있다.
불을 지피며 기름 보일러의 시작과 끝을 생각해본다.
보일러의 기름은 저 먼 중동의 어느나라에서 바다를 건너 와서 정유회사를 거쳐 또 다시 몇단계를 거쳐 우리집 기름탱크에 왔을 것이다.
정전이 되면 무용지물인 저 보일러기계엔 발전소의 모든 과정이 연결되어 있고
제철소도 연결되어 있고,도색작업이 있고 TV광고도 들어 있다.
모두가 정말 복잡한 과정들이다.
그러고 보면 일견 일이 많아 보이는 구들방의 잠자리는
오히려 참으로 단순 명쾌란 과정이고 나와 같이하는 과정인 것 같다.
내가 직접 관여하든 안하든 내 눈에 보이든 안보이든
시작과 끝까지의 과정을 연결시켜 원만하고 온전하게 사물을 파악한다면
우리가 누리는 편리함의 극치속에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소비되었는지 쉽게 알수 있다.
편리하면 할수록 그 편리함 밑에 깔린 에너지는 엄청나다는 진실은
문명이기에 길든 우리지만 꼭 알고 있어야 할 온전한 진실이 아닐까.
편리한 건 사실 편리한게 아닌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