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될지 모르는 불안한 세상에 확실한 것이 있다면 언젠가는 이 육체의 허물을 벗는 다는 것입니다.
지금 병원에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막 태어나 젖을 빨고 있는 아기도 예왼 아니죠.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많이들 부정하고 싶어하고
이야기 하는 것 자체를 금기시 합니다.
\'티베트 사자의 서\'에 보면 죽음의 순간과 죽고 나서 얼마간의 시간이
살아온 시간 만큼이나 중요하고 강조 합니다.
그러나 개나 고양이도 때가 되면 스스로 찾는 그런 품위 있는 죽음을
인간은 현대 의학에 의해 박탈 당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언제 올지 모르는 그 순간을
스캇 니어링이 맞았던, 많은 선승들이 가졌던 그런 차분하고 위엄 있는 죽음을 갖기 위해 노력해 봅니다.
아랫글은 녹색평론을 읽는 사람들(
http://ournature.org) 의 게시판에 강승희 님이 올리신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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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치가 나에게
얼마전 아버님이 돌아가셨습니다. 큰 병없이 가벼운 증세로 입원하셨다가...
입원 첫날 아버님은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이런저런 검사를 받으셨습니다. 시간내서 아버님 곁을 지키는 아들 며느리들 보며 오히려 기분이 좋아보이셨습니다. 결과는 모두 정상이라 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장출혈 증세를 보이신 아버님은 중환자실로 옮겨 지셨고 과다 출혈로 쇼크상태에 빠지셨고 심장이 멎어 심폐소생술을 받으셨고 그 이후 한번도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셨습니다. 의식이 없는 채로 2주 가까이 누워계시는 동안 병원은 우리 가족 모두에게 참 잔인한 곳이었습니다. 중환자실은 환자와 가족을 철저히 소외시키는 곳이었습니다. 중환자실에서 첫날밤 아버님은 무슨 예감이 있으셨던지 아들을 몹시 찾으셨다 합니다. 간호사는 바로 아래층 보호자 대기실에 있는 가족을 불러 주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면회시간이 되어서야 어머님은 촛점 잃은 남편의 눈동자를 보았습니다. 영문도 모른채..
하루에 두번 30분씩 허락된 면회시간에 우린 함께 아버님을 만날 수도 없었습니다. 혼자 들어가 물끄러미 아버님의 호흡을 세다가 창백하게 부푼 손발을 만지다가 부질없이 눈을 맞추다가 도대체 이 일을 중얼거리다가 낯선 사람들 속에서 부끄러운 눈물을 숨기며 밖으로 나와 기다리는 다음 가족에게 가운을 넘겨주는... 남은 가족들이 아버님 앞에서 손을 잡고 서로를 위로할 수 있는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거기 혼자 누워 계신 아버님만큼이나 가족들도 외로웠습니다.
지혈이 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했는데 지혈이 되고 난 다음 아버님은 더욱 악화되셨습니다. 기계로 하는 호흡, 약물로 뛰는 심장, 수혈로 겨우 온기를 유지하고 있는 몸. 의사는 다시 심장마비가 올 경우 심폐소생술을 할 것인지 가족이 결정하라 했습니다. 그리고 또 며칠 후, 집으로 모시고 가고 싶으면 그리하라 했습니다. 집에 가서 호흡기를 떼도 스스로 호흡이 가능할지는 모른다 했습니다. 아버님은 이미 산사람이 아니었지만 저승 문턱에서 그를 끌어 낸 의사는 가족에게 그 죽음을 떠 넘겼습니다. 남편에게 아버님을 편히 보내드리자고 했습니다. 하지만 호흡기를 떼자고도 수혈을 그만 두자고도 할 수 없었습니다. 매일 아버님을 보는 것이 고통스러웠습니다. 아버님은 삶도 죽음도 모두 빼았겼습니다. 그렇게 혼자 버려 둔 채 시간만 보내고 있다니. 가족들은 위로와 사랑을 나누는 대신 하루 하루 더해가는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화가 나고 부끄러웠습니다. 일리치는, 니어링은, 나의 신념은 뭔가. 아버님은 다시 출혈이 시작되어 돌아가셨습니다. 임종을 했지만 저는 아직 아버님의 죽음을 모릅니다. 호흡기는 여전히 풀무질을 계속하고 있었고 모니터의 초록색 신호는 아무런 변화도 가르쳐주지 않았으니까요. 이제 그만 나가라고 하니 돌아가셨나보다. 아니 우리가 들어가기 전에 이미 돌아가신 거였을지도. 참 처량한 일이었습니다.
오래전에 돌아가신 제 친정 아버지는 집에서 임종을 하셨습니다. 혼수상태 반나절만에 갑작스럽게 닥친 황망한 죽음이었지만 평화로웠습니다. 조금 거친 호흡 끝에 길고 편안하게 숨을 내 쉬는 순간 거짓말처럼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돌아가셨다. 그 숨에 실려 영혼이 조용히 빠져 나갔구나. 그 육신과 더불어 그 삶이 조용히 스러지는 것을 찰라지만 고요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그에게도 가족에게도 축복이었음을 이제는 압니다. 그의 죽음을 받아들일수 있었기에 생전의 모습도 따뜻하게 추억할수 있습니다.
남편에게 부탁했습니다. 나 절대로 병원에서 죽게하지 말라고. 그렇게 혼자 두지 말라고. 죽음을 준비하는 일이 사는 일만큼 중요하다는 걸 배웠습니다. 자신의 죽음에서 소외되지 않고 인간의 이름으로 자연에 돌아가기 위해서.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서.
즐거운 일은 아니지만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아버님 일을 겪는 동안 녹평친구들 생각을 자주 했기 때문입니다. 혼란과 좌절... 전화해서 그냥 목소리를 듣고 싶기도 했습니다. 앞으로도 녹평친구들 생각 자주 할것 같습니다. 중요한 순간에 저 자신을 배반하지 않기 위하여.
\'amicus mortis\' 일리치가 나에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