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나절에 생멸치가 도착했다.
매년 농협에서 젖갈용 생멸치를 마을별로 주문을 받아
공급한다.
공판장에서 경매를 받은 싱싱한 생멸치가
비릿한 냄새를 풍기며 마을 회관앞에 도착했다.
마을 반장의 임무를 행할 때다.
마을회관 엠프를 켜고 알린다.
"알려 드리겠습니다. 지금 회관앞에 생멸치가 도착했습니다.
멸치를 신청한 농가에서는 용기를 준비하셔서
회관앞으로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
플라스틱 용기를 들고 집집마다 멸치를 받으러 나온다.
멸치는 보리누름에 제일 맛있다는 말이 있듯이
아닌게 아니라 누런 알을 배고 있는 멸치가 기름기가 올라보인다.
매년 김장에 멸치 젖갈을 넣기 때문에
대부분의 집에서 젖갈을 담근다 .
차철이라 바빠서 모일 기회가 없던 마을 사람들이
오랜만에 멸치때문에 모였다.
멸치 눈알을 보니 아주 싱싱한 것 같아
"그거 조려먹으면 맛있겠다."
"그거 좋다. 술안주 삼아 한잔 하자"
손벽이 마주쳐 소리를 낸셈이다.
집집마다 다라이에 받아놓은 멸치를 한주먹씩 갹출하여
지은이 아빠가 서툼 솜씨로 한냄비 조렸다.
멸치를 조리는 사이 누구가 상추를 뜯어 씻어 왔다.
당연히 누군가가 매실주도 한병 들고 나왔다.
짭잘하게 조려진 멸치를
마당평상에 놓고 둘러 앉아 매실주를 한잔씩 돌린다.
차만들며 지친 몸이 확 풀린다. 술잔이 오가며
매실향처럼 이야기 꽃이 핀다.
윗마을 중촌에 최씨 아저씨는 차따다가 날파리가
귀에 들어가서 고생한 이야기를 했다.
차를 따는데 파리라는 놈이 왱왱 거려 손을 휘져어 쫓았는데
어쩌다 귓구멍에 박혔는데
손으로 파내려 해도 계속 귀안으로 파고 들어가 아무리 꺼내려해도 안돼
집으로 달려갔다.
참기름 몇방울을 귀에 떨어뜨려 넣으니 이놈이 발광을 하더니
조용해졌다고 한다.
옛날엔 그랬다고 한다.
귀에 벌레가 들어가면 지금처럼 후레쉬를 비춰서 밖으로 기어나오도록
유도하는게 아니라 참기름을 부어 죽인다음 누에솜털을
요즘의 면봉처럼 만들어 살살 돌려서 꺼집어 냈다고 했다.
아저씨는 기름을 부어 귓속의 파리는 죽였지만 도저히 꺼낼 수가 없어
이틀이 지나서 병원을 찾아가 꺼집어 냈다고 했다.
그 몇일 전엔 그 집 아주머니가 차를 따다 뱀에 물려 고생을 했는데
올해 그집이 차따는데 애로가 많다.
저마다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매실주 댓병 한병을 비우고서야
알딸딸하게 집에 와서 져녁상을 받았다.
술기운 때문일까
따뜻한 밥그릇 한가득 담긴 쌀알들을 오늘따라 크고,많게만 보인다.
밥 알 한 알 한 알이 너무 무겁고 감사하게 느껴진다.
이렇게 넉넉한 밥상이 감사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그러고 보니 생멸치 선생께서
싱싱한 눈빛으로 한 가르침 주신 하루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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