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제다 > 자유게시판 > 지율스님 “생명의 화두는 결코 놓을 수는 없다”

지율스님에 관한 내용입니다. 참으로 안타깝기만 하네요. 어찌할지... 아래글은 이계삼님께서 쓰신 글을 퍼왔습니다.

저는 기독교도이지만, 기도를 잘 드리지 않습니다. 주의집중이 잘 되지 않아서입니다. 그러나 이제 며칠간이라도 \'기도\'하려고 합니다. 언젠가 \'희생\'이라는 러시아 출신 감독의 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영화는 결국 \'기적\'에 대한 이야기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는 그 영화의 깊이를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그러나 이 며칠 간은 이제 \'기도\'하고 \'기적\'을 기다리는 마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래 글은 한겨레 \'왜냐면\'을 염두에 두고 고심끝에 쓴 글입니다. 지면에 채택될지는 자신할 수 없습니다. 채택되지 못하더라도 제 작은 기도가 될 것이라 생각하여 이 자리에 옮겨 놓습니다. 지율 스님을 어찌할 것인가 1. 지율스님이 죽어가고 있다. 대통령에서부터 저잣거리 민초들까지 모두가 치성을 드리며 ‘경제’라는 귀신을 모시는 나라, 유일신 ‘경제’가 죽어간다는 말 한마디에 소스라쳐 똘똘 뭉치는 제정일치의 나라, 그 신앙의 열기가 이제 꼭대기까지 차오른 나라에서 한 가녀린 비구니가 꺼지기 직전의 촛불처럼 온 힘을 다해 생명의 불꽃을 밝히고 있다. 지율 스님의 단식은 이번이 네 번째다. 첫 번째 단식은 38일, 두 번째 단식은 45일, 그리고 지난 여름의 3차 단식은 58일간이었다. 그리고, 부산고등법원 재판부의 판결이 내려진 지난 10월 27일 이래 바로 지금 1월 12일까지 78일째 단식을 하고 있다. 지율 스님은 지난 3년간 네 차례에 걸쳐 219일동안 곡기를 끊었다. 이제 스님의 육신은 생(生)에서 사(死)로 완전히 기울어있고, 오직 형형한 정신만이 남아 육신을 가까스로 지탱하고 있다. 이제 스님의 단식을 중단시킬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은 꽉 막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공사가 이미 진행되고 있는 고속철도 천성산 관통은 이제 모두에게 충분히 가능한 일로 다가간다. 오직 한 사람, 지율 스님만이 이 모든 사태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결국 죽어갈 천성산과 함께 자신의 운명을 함께하려 한다. 지난 여름, 폭염 속에서도 멈추지 않았던 스님의 58일간의 단식, 스님은 결국 쓰러졌고 꿈쩍도 하지 않았던 국가 권력이 숱한 파행과 약속 파기로 점철된 이 사안의 아주 작은 일부를 수정했다. 환경영향평가 재실시. 그러나 그것마저도 국가권력은 지키지 않았고, 사법부는 그 잘못을 묻지 않았고, 공사는 강행되었다. 그리고, 스님을 도왔던 시민단체들도 ‘차선’의 길을 찾아 스님의 곁을 떠났다. 스님은 홀로 남았다. 지난 3차 단식을 정점으로 그나마 타올랐던 열기도 식었다. 사람들은 묻는다. 왜 이렇게까지 하느냐고. 그만하면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했는데, 그 결과가 지금 상황인데, 세상 일이 원래 이렇게 돌아가는 것 아니냐고, 당신의 실천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깨우쳤고 감동을 느꼈는데, 이제 새로운 생명운동의 길을 찾아보는 것이 옳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혹시 그것도 불가에서 가장 경계하는 ‘집착’ 아니냐고 말한다. 더 나아가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목숨을 담보로 한 극단적인 투쟁은 이제 지양했으면 좋겠다’고. 그들에게 묻고 싶다. 인간이 ‘목숨을 담보로 한 극단적인 투쟁을 위해’ 3년 사이에 219일간 곡기를 끊을 수 있냐고. 죄의식과 무력감의 표현이라 받아들이기엔, 이 불모의 의식세계에 대한 좌절이 너무 크다. 2. 돌이켜보면 지율 스님이 천성산을 지키기 위해 세상으로 나오면서부터 벌어진 이 모든 일들은 이 땅의 절망과 희망의 지점을 정확하게 비추어주었다. 지율 스님이 비추어 낸 이 땅 절망의 지점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이 땅의 통치자, 경제 유령의 실체다. 우리는 경제 유령의 십자군이 되어 날마다 진군해 간다. 경제 유령은 이 세계를 ‘네가 죽어야 내가 사는’ 삭막한 전쟁터로 만들었고, 이 땅 어느곳 하나 빠뜨림없는 자신만의 천년왕국을 선포하였다. 그리하여 우리는 ‘돈’이 되는 일이라면 침략 전쟁의 하수인 노릇도 마다하지 않으며, 참수의 목전에서 ‘살려달라’는 동족의 처참한 절규도 외면한다. 갯벌을 메워 수억조의 생령을 생매장하고, 산천을 뒤집고 거기에 깃든 생명체를 내쫓아 생긴 돈을 나누어 가진다. 3년 전, 지율 스님이 천성산 수행 도량을 떠나 홀로 저잣거리에 섰을 때 세상사람들은 곡기를 끊으며 고속철도 천성산 관통을 반대하는 스님의 모든 노력을 다만 부질없는 것으로 치부했었다. 그리고 조만간 ‘정리’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것은 이 싸움이 막강한 공권력을 등에 업고서 수조원의 돈을 쏟아붓는, 그러면서도 결코 중단을 모르는 거대한 관성을 가진 ‘국책사업’이기 때문만은 아니었으리라. 실로 이 싸움은 이 땅의 실질적인 통치자와 그가 심은 좌절감과 무사안일과, 무기력과의 싸움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율 스님은 천성산 계곡에서 뛰어노는 그 조그마한 도롱뇽을 앞장세웠다. 도롱뇽은 스님이 사랑하는 천성산 12계곡과 22개의 늪에 깃들어 살아가는 힘없고 약한, 그러나 아름다운 생명체들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들은 어느날 천성산을 거닐던 스님에게 ‘살려달라’고 가녀린 목소리로 호소했고, 스님은 그 소리를 들었다. 그리하여 스님은 천성산을 완전히 종단하는 13km의 장대터널이 뚫리고 지하 수맥이 교란당하고 이 어린 것들이 서서히 쩍쩍 말라붙어 죽어갈 것이라는 안타까움에 주저앉아 울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코웃음쳤다. 사람 손가락 하나 크기의, 돈도 안 되고 힘도 없는 이깟 도롱뇽 한 마리가 어찌 이 수조원의 인간의 역사(役事)를 멈출 수 있냐고. 그러나, 스님은 우리들에게 이 작은 도롱뇽이 실은 깊은 망각 속에서 잊어버린 ‘본래의 우리 자신’임을 깨우치고자 했다. 그리하여 도롱뇽이 사라진다면 결국 우리 자신들도 머지 않아 이 땅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우쳐주고자 했다. 스님은 인간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은 고행으로 호소했다. 그리고, 눈꼽만치의 폭력과 타협과 술수를 허락치 않았다. 이 인간정신의 위대함과 그것이 품은 사랑의 크기 앞에 대통령이 약속했고, 사업이 잠시 멈추기도 했고, 무엇보다 40만이 넘는 시민들이 거대한 물결로 공명했다. 아직껏 없었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꿈틀거리기도 했다. 이것이 지율 스님의 실천이 비추어낸 이 땅 희망의 지점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국가 권력과 거대 언론은 시작부터 지금까지 때로는 무시와 냉소로, 때로는 약속과 거듭된 파기로 이 물결을 거슬렀고, 시간은 그들의 편이었다. 무엇보다 그들에게는 ‘경제’라는 이 땅 유일신의 강력한 엄호가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경제 유령의 철권통치가 심어준 습관적인 의식-무기력감에 서서히 젖어갔다. 3. 지율 스님은 왜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인가. 78일째의, 아직도 진행중인 총 219일간의 단식. 무엇보다 자신의 육신을 도저히 회복불가능한 지경으로 이끌어가는, 그리고 이제는 도대체 어찌 해야할지 모를 무기력감에 몸을 떠는 많은 시민들을 더더욱 괴롭게 만드는 이 길 위에 서 있는가. 과연, 지율 스님은 다른 길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인가. 그것은 어느 작가의 표현처럼 ‘사랑에 대안이 없듯, 생명에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품안의 자식을 죽게 내버려둔 뒤에 다른 자식을 살리기 위해 소매를 걷어부치는 어머니가 어디에 있던가. 원래부터 천성산과 지율 스님은 한 몸이었다. 지율 스님은 천성산의 죽음이 결국 자신의 죽음임을 예감한 것이다. 이것은 극단적인 정신의 소산인가, 완전한 사랑의 필연적인 귀결인가. 그 사랑은 개인적인 정신의 표현인가, 절망뿐인 이 세상에 대한 절박함의 표현인가. 지율 스님을 살리는 것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 지율 스님을 살리는 것이 천성산을 살리는 것이다. 완전한 일치. 이제 우리는 물어야 한다. 지율 스님을 어찌할 것인가. 나는 이제 말하고 싶다. 국가 권력의 수행주체, 노무현 대통령은 청와대를 걸어나와 지율 스님을 만나야 한다. 그리고 이제 단식을 멈추시라고 말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약속 파기와 국가권력이 벌여온 그간의 파행에 사죄해야 한다. 자이툰 부대까지 날아가 침략 전쟁의 뒷수습에 징발된 불쌍한 이 땅의 아들들을 끌어안았던 그가 지율 스님 앞에 무릎꿇지 못할 이유가 없다. 무뢰한의 무릎 사이를 기던 어린날의 한신 장군처럼 냉혹한 약육강식의 국제질서에 무릎꿇지 말고, 이 땅의 통치자 경제 유령 앞에 무릎 꿇지 말고, ‘진리’로 살아있는 완전한 인간 정신 앞에 무릎 꿇어야 한다. 그 자리, 곧 이 불모의 땅에 희망이 새롭게 돋아날 것이다. 정말, 시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