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은 기억에 남는 한 해였다.
밤늦게까지 우리집에서 놀다 가는 지인의 차를 빼주다가
동네 개울로 차가 추락하는 사고가 있었다.
차는 폐차하고
나는 호동마을에 살고 계시는
한솜 선님 (대종교의 수행자를 부르는 호칭으로 한솜선님은
여자선님이다) 집에 한사흘 휴식을 취하러 갔다.
선님 집에는 많은 사람이 단식을 하러온다.
처음엔 나도 사고로 놀란 몸과 마음을 쉬러 갔으나
아예 본단식 10일, 보식까지 한달정도 있게 되었다
단식하러 온 사람은 나외에 2명이 더 있었다.
단식의 과정은
밥량을 줄이는 감식기간
생수외에 아무 것도 안먹는 본단식기간
서서히 밥량을 늘려서 정상식까지 가는 보식기간
이렇게 세단계가 있는데,
이중에서 보식이 가장중요하다.
본단식 기간중에는 새까맣고 진득한 숙변을 보는 것이 중요하고
사람마다 그량도 다르고 숙변을 다 배설 못하는 사람도 있다.
보식에 들어가면
멀건 미음에서 부터
10여가지 반찬이 나오는 정상식까지 밥의 량과 반찬의 가지수가
많아 지게 된다.
정상식이 다되어 가면
비었던 속이 차면서 첫똥을 누게 된다.
첫똥을 쉽게 보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평소에 변비로 변을 가늘게 보던
사람은 단식후 첫똥을 누는데 상당한 고통이 따른다.
단식전엔 장의 소화흡수능력이 떨어져 변이 질척하고 가늘게 나오다가
단식후엔 장기능이 좋아져서 변이 딱딱하고 굵게 나오게 되는데
항문이 단식전보다 훨씬 굵어진 변을 처음 통과시키면서
엄청난 고통이 따르게 된다.
심지어 항문이 찢어지는 경우도 있다고.....한다.
어떤 아주머니는 그 고통을 해산의 고통보다 더 심하다고 했다.
나와 같이 단식하던 사람중 한분이
선님과 같이 공부하는 '고암'의 아버님이셨다.
그 어르신은 나보다 며칠 늦게 단식에 합류하셨는데
역시 차사고로 갈비뼈에 금이 갔는데 병원에 계신것을
선님과 고암이 모시고 온 것이다.
고암 아버님의 평생 잊지 못할 여름날이 될 줄은
그 누구도 몰랐을 것이다.
첫 똥을 누기 전까지는......
내가 첫 똥을 별 무리없이 누고 며칠 있을 즈음
고암 아버님도 정상식을 하고 계셨다.
어느날 아버님도 변이 마렵다며 첫똥을 누러 화장실을 찾으셨다.
한참을 계시더니 아버님이 나오셨다.
얼굴빛이 약간 노랗게 변해 있었다.
변을 못봤다고 하시며 힘들어 하셨다.
한솜선님이 조금 있다가 변의가 다시 있으면
관장약을 넣고 화장실에 가보시라고 하셨다.
그리고 나보고 관장약을 넣으달라고 부탁했다.
여러 정황으로 볼때
선님이 아버님께 관장약을 넣어 드릴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아버님이 30분정도 계시더니 다시 화장실을 간다고 하셨다.
나는 관장약을 들고 따라들어갔다.
아마도 간호사가 첫주사를 놓는 기분이 그럴 것이다.
관장약을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님은 변을 못보셨고
더욱 더 힘들어하셨다. 두 세 차례 시도를 했지만 마찬가지였다.
선님이 이번에는 항문 주위를 손가락으로 눌러 맛사지를 하라고 하셨다
여러 정황으로 볼때
당연한 말씀이었다.
손가락으로 아버님의 항문 주위를 눌러보니 딱딱한 변이 만져졌다.
그 굵기가 상당히 딱딱하고 굵게 느껴졌고
아버님의 항문은 작게만 보였다.
반쯤 기울어져 있고 똑바로 서있지도 못할정도로 낮은 화장실을
10여차례들락 날락 하면서 나는 산파의 심정으로 최선을 다했다.
몇통의 관장약을 쓰고
딱딱한 변 부위를 손으로 눌러 계속 맛사지를 해도
변은 반쯤 얼굴만 내밀고 쑥 나오질 않았다.
아버님은 너무 힘들어 하시며 실신 직전 까지 갔다
만약 나혼자 이상황을 맞이 했다면 119를 불러 응급실을 찾았을 것이다.
그러나 산전 수전 다 겪으신 선님은 흔들림이 없으셨다.
오히려 .......
직접 나서셨다.
직접 관장을 하시고 손수 맛사지를 하시는 것이었다.
............
내가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손이었다.
세상에서 가장아름다운 손길에도 불구하고
아버님의 변은 나오지 않았고
내가 부축해드려야 화장실에갈 수 있을 지경이 되었을 즈음,
외출 했다 연락을 받고 급히 달여온 고암이 나타났다.
부자지간 단둘이 화장실에 들어갔다.
"아버지 한번 보입시더"
"아이고, 니가 날로 지길라꼬 여기 데리왔제?"
"어디보입시더. 아버지 약간 치질기가 있네예"
"아이고 이놈아 내죽는다 이노무 자슥아!"
"가만 있어 보이소.아, 이거, 내가 파내야 되겠네"
"아아!아프다!아프다!"
"조금만 참아 보이소. 다 됐심더."
"아--아--악-"
................
상황은 아들이 나타난지 5분만에 끝났다.
아버님은 지친채로 그러나 편안한 얼굴로 잠이 드셨고
우리는 간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선님 !
아버지가 숙변을 못봐서 그런지
변 끄터머리에 큰 똥딱지가 생겨서 변이 안 나온깁니더."
"나이가 드셔서 힘이 달려서 고생하셨다"
"그라고! 병원에 있을때 집에서 달여온 장어 고운거 먹지 마라켔는데
아버지가 아까와서 몰래먹고 온거 같더라.
똥 딱지위에 장어가시가 있더라꼬요"
"진짜가? 너무 웃긴다. 그런데 고암! 손은 씻고 묵느기제"
"하하하하하하하하"
모두 웃었다.
스님의 아름다운 손길과
그리고 5분 만에 아버지의 막힌 똥구멍을 한 손가락으로 파낸 고암의
손길이 있었기에 가능한 행복한 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