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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직업을 찾아서.

글쓴이 : 유로제다 날짜 : 2007-03-07 (수) 22:27 조회 : 4789
 

1994년 6월, 화개 국사암 아래 자리잡고 있는 목압마을로 이사했다.

월 5만원짜리 빈집에 이사부터 하고 한달 정도는 집 수리를 했다.

도배 장판을 새로하고 옛날 부엌을 치워서 아궁에 불을 넣을 수 있도록 하고

연탄 보일러도 놓았다. 홑블록으로 지어 놓은 아랫채 빈 방 하나에 가스렌지를 설치하여 부엌으로 쓰고 창고에 수도를 연결하고 순간온수기를 달아 욕실을 만들었다.


생활하기 위한 기본적인 시설을 대강 정리를 하고 나니 막상 무슨일을 할까

막막하였다. 먹고 살기 위해 들어왔다기 보다 도시생활을 피해서 아무 계획도 없이 들어온 처지에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있을리 만무하다.

더구나 집사람은 임신 6개월의 몸이었다.


궁리끝에 제일 먼저 한 일은 미꾸라지 양식이었다.

같은 동네 형님이 양식과 판매가 가능하다고 하여 같이 시작한 일이었다.

동네뒤 국사암 가는길 어귀에  지금은 연밭과 부도터로 다듬어져 있지만

당시엔 1000평정도의 묵혀진 다랑지 논이 있었다.

다랑지 논들 제일 윗쪽에서는 1년 내내 물이 솟아나고 있었다.

물이 솟아나는 논 주인에게 허락을 얻어 묵혀논 논에 미꾸라지를 기르기로

했다.

미꾸라지는 따뜻한 수온의 진흙땅에서 잘자란다.

우리가 미꾸라지를 기르기로 한곳은 화개지역 지역 전체가  그렇듯이 찬물이 솟아나는 사토질의 땅이라서  미꾸라지가 잘 자랄 여건은 아니었다.

그래도 양지바른 땅이고 가둬 놓고 기르면 될 것 같았다.


웅덩이를 빙둘러 망과 양철판으로 막아 미꾸라지양식장을 만들었다.

차가 근처까지 갈수 없어 자재를 일일이 들고 지고 날랐다.

고향에 있는 동생이 와서 자재를 운반하느라 무척 고생했다.

양어장에 집어 넣을  미꾸라지를 잡기 위해 고향인 산청으로 갔다.

산청은 미꾸라지가 아직도 많이 잡힌다.

미꾸라지가 살기좋은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고 토양이 비옥해 벼가 잘자라

농약을 거의 안치기 때문이다.

 그 해 여름은 몇십년 만의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해였다.

미꾸라지는 논 사이로 좁고 길게 뻗은 수로에서  많이 잡히는데 하류에서 부터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며 잡는다.

한사람이 쪽대를  잡고 있으면 다른 한사람이 다섯 발자욱정도 위에서부터 발길질로 물장구를 치며 쪽대까지 미꾸라지를 몰아가면 쪽대잡이가  속히 쪽대를 들어올리면 되는 것이다. 이같은 방법으로  점점 상류로 올라가는 식이었는데 쪽대를 들어 올리면 제법 미꾸라지들이 많이 잡혔다.

큰 놈들이 많이 들어올 땐 조용한 소리로 함성을 지르고 작게 들어오면 얼른

다시 쪽대를 갖다대고 발길질을 해댔다.

발길질하는 사람이 지치면 위치를 바꿔가며 하기도 했다.

미꾸라지뿐 아니라 붕어 개구리 물벌레 등도 같이 들어왔고

어떨 땐 뱀이 들어 올 때도 있는데 그땐 두 사람 다 비명을 지르고 쪽대를 내던지고 또랑 밖으로 뛰쳐나왔다.

 몇 십년 만의 무더위에 母子는 입에서 단내가 났지만 미꾸라지 잡는 재미에 그리고 어머니는 자식하는 일을 돕는 일이기에 해가 저물도록

바람 한점 없는 여름  들판 가운데서  미꾸라지를 잡았다.

그렇게 잡은 미꾸라지가 제법 많았다.

이 놈 들을  지리산 화개골짝까지 살려서 운반하는게 문제였다.

결국 항아리에다 미꾸라지를 담아 트럭에 싣고 옮기기로 했다.

항아리는 숨을 쉬니까 미꾸라지들도 화개까지 갈 동안 살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조금이라도 빨리가기 위해 지름길을 선택해는데  일부구간이 비포장 도로여서 어려움이 많았다. 차가 많이 덜컹거려 옆에 앉은 만삭의 집사람도, 뒤에 실은 항아리도 차가 덜컹거릴 때마다 깨지랴 상하랴 불안 하기만 했다.

이렇게 정말 천신만고 끝에 화개에 도착해서 보니 다행히 미꾸라지는거의

다 살아 있었다. 다음엔 일일이 이 놈들을 한바게스씩 퍼 담아서 양어장까지 들고 가야했다. 차길이 없어 어쩔 수 없었다. 산청에서 잡은 미꾸라지를 양어장에 다 갖다 부어 놓고 나니까 마음은 이미  부자가 된 것 같았다.

이제 잘 기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미꾸라지 먹이는   계분을 사와서 넣었고 음식찌꺼기도 넣어주었다.

이 놈들을 잘 키워 다음해 가을에 팔아 볼 작정이었다.

그  해 겨울이 지나고 다음 해 봄이 지나 초여름 장마가 왔다.

비가 계속되자 곳곳에서 길위로 물이 쏟아져 내렸다.

나는 양어장을 둘러보기위해 국사암 가는 길을 걸어서 올라가고 있었다.

국사암 가는 길도 예외없이 물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길위에 꼼지락 거리는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허리를 굽혀 자세히 보니 놀랍게도 그건 미꾸라지였다.

한 마리가보이는가 싶더니 그 뒤로  또한마리 또한마리... 불길한 예감으로

양어장으로 달려가 울타리를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샘물이 졸졸 흘러 들어가는 쪽에 손가락 만한 구멍이  

나 있었다.


미꾸라지들은 비가오면 활동이 왕성해지고 새 물이 흘러들어오는 쪽으로

몰려들게 되는데 그 놈들을 잡아 먹기위해 주둥아리가 길쭉한 새 한마리가 망

을 쪼아대서 구멍이 난 것이다. 

새는 새대로 포식을 즐겼을 것이고 살아남은 나머지 미꾸라지

그 구멍을 통해 거의 다 빠져 나온 것이다.

비가 그치자 우리는 양어장 아래쪽 다랑지 논 사이 고랑고랑마다 통발을 놓아 도망친 미꾸라지를 잡아들이기로 했다.

된장을 넣은 떡밥덩어리를 통발안에 넣고 곳곳에 놓아 두었다.

통발 마다 가득 가득 미꾸라지들이 잡혔다.

좀 늦게 통발을 거두면 그 주둥아리 뽀족한 새가 통발마져 구멍을 내고 미꾸라지를 또 꺼내먹었다. 그 새가 원수 같았다.

또 어떤 통발안엔 뱀이 들어 앉아 있어 사람을 기겁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해서 도망친 미꾸라지를 다시 잡아들였지만 얼마후 우리는 더 황당한 일을 당해야 했다.

서로가 게으른 이유로 양어장을 둘러보지 않은 사이, 하루 아침에 양어장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논 주인이 조각조각 나뉘어져 있는 다랑지 논을 포크레인을 동원해 반듯한 두개의 논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우리가 현장에 가봤을 땐 이미 양어장은 흔적도 없어져 버렸고 양어장울 둘려쳤던 쇠기둥과 양철 조각들만 옆에 치워져 있을 뿐이었다. 

논 주인은 우리에게 양어장엔 미꾸라지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같이 미꾸라지를 길렀던 동네 형님은 논주인에게 상당한 서운함과 불쾌감을 느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미꾸라지 사업은그렇게 허무하게 끝이 났다. 결국 우리는 미꾸라지를 한마리도 팔지 못했다.

 해마다 장마비로 길위에 물이 넘쳐 흐르면 길위에서 꼬물대던 미꾸라지

생각난다. 그리고 그 때 고생한 동생과 어머니에게 미안한 마음에 낯이 뜨거워 진다. 산청에서 이곳으로 잡혀왔던  미꾸라지들은 화개계곡을 따라 섬진강에서 잘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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