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내게 한 말 중에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있는 말이 있다.
“ 너는 니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라”
처음 그말을 들었을 때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왠지 그냥 내뱉는 말이 아니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가슴 깊은데서 나오는 말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아버지의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서야 그렇게 말씀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어려서 서당공부를 했는데 또래들 중에 가장 총명하여 가장 먼저 글을 깨쳤다.
하지만 친구들이 다들 신식교육을 받을 때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반대로
그러지 못했고 그게 두고 두고 인생의 회한으로 남게 되었다.
신식교육을 받은 친구들은 다들 도시에 나아가 든든하게 살게 되었고 아버지는
시골에서 농사꾼이 되어 고생스럽게 살게 된 것이다.
언젠가 아버지의 작고 굳은 손을 보면서 말씀드린적이 있다
아버지는 선비가 될 사람이 농사꾼이 되셨어요
그래서 힘들고 고단한 겁니다.
농사꾼 아버지들이 다를 그러하듯
아버지도 힘들고 고단한 삶을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내가 국민학교 5학년을 마칠 무렵 나를 부산으로 전학시키셨다.
부산에 나를 떨어 뜨려 놓고 오는데
어머니는 객지에 혼자 남을 어린놈이 안쓰럽고 가슴이 아려와
눈물을 흘렸지만 이 녀석은 웃으며 손을 흔들더라고 했다.
이 때부터 나의 유학생활은 시작되었다.
국민학교 졸업식날 무슨 상을 하나 받았는데 아무도 축하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처음으로 나 혼자 가족과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고 느낀 날이었다.
졸업식이 끝나고 식구들과 같이 나서는 친구들과는 달리
나혼자 학교를 나섰지만 그래도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보여 드릴 상장이 있어 뿌듯했다.
국민학교를 친척집에서 다닌 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대학 4년 동안 하숙과 자취생활을 하며 공부를 했다.
이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학비, 생활비를 대기 위해 부모님은 농사일에 피땀을 흘렸고,
나는 부모님의 그 노고에 보답하기 위해 그 세월의 무게를 짊어지고 공부했다.
부모가 되어 지금 생각해보니
부모는 자식이 안스러웠고, 자식은 부모님이 안스러웠다.
방학을 집에서 보내고 다시 학교가 있는 부산으로 오는 길,
농사일에 지친 부모님을 뒤로하고 부산으로 향하는 버스 속에서
반드시 아버지 어머니의 고생스러운 삶에 보답하리라 눈물로 다짐하고 다짐했다.
하지만 그 다짐을 나는 끝내 지키지 못했다.
대학졸업과 함께 좋은 직장에 들어가 편안하게 돈도 많이 벌고 명예를 얻었다면
그 긴 세월 동안 고생한 보람도 컷을 것이고
아버지의 주름도 지금과 같이 깊고 어둡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의 말이 씨가 되었을까
난 내가 하고 싶은대로 살았다.
현실보다 이상을 추구했고
물질적인 가치보다는 정신적인 가치를 추구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옳다고 생각되는 대로 살다보니
어느 순간 도시의 직장생활을 접고 시골로 들어가느냐 마느냐 하는 갈림길에
나는 서 있었다.
고단하고 힘든 시골생활을 벗어나 넓은 세상 활개치며 살라고 10년 공부시켰놨더니
되려 시골 구석으로 들어가려는 자식을 보며
아버지 어머니가 얼마나 속이 상했을까 생각하면 지금도 낳이 뜨겁고 가슴이 메인다.
“자식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
언젠가 아버지가 벽에 써 붙여놓은 글귀를 보며 그간의 아버지의 맘고생을 엿볼수 있어 더욱 맘이 아팠다.
지금까지도 차마 염치가 없어 말하지 못했지만 언젠가 꼭 말씀드리고 싶다
“아버지, 어머니 죄송합니다.
고생 고생하셨는데 100분이 1도 못갚아 드려 죄송해요“
결국 나는 시골생활을 선택했고 그와 동시에
참 많은 것을 버리고 왔다.
하나 하나 일일이 나열하기 버거운 것들을 버리고 왔다.
뭔가를 선택한다는 것은
곧 뭔가를 포기한다는 것이다.
알 수 없는 미래지만
미래에 뭔가을 얻고자 한다면
무엇을 버릴 수 있는가를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다.
“아버지, 이제
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는 삶의 방식을 조금씩 접고 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도 그랬던 것처럼... 건강하게 오래 살아주세요“
